남은 건 집 한 채

평생 사업을 하신 분에게 남은 건 집 한 채였다.

김 선생님이 사무실에 오신 건 일흔이 가까워서였다.

이십 년 넘게 사업체를 하신 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사업으로 풍족하게 사셨다.

“제일 좋을 때는 어느 정도셨어요?”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지요.”

그러다 크게 손해를 보셨다. 버티다가 결국 정리하셨다.

정리하고 보니 남은 게 집 한 채였다.

“저축은 안 하셨어요?”

“사업에 다 넣었지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게 제일 확실한 줄 알았으니까.”

그 말씀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세대 어른들 대부분이 그렇게 사셨다. 금융상품은 못 미더웠고 내 손으로 굴리는 장사가 제일 정직하다고 믿으셨다.

제일 걱정하시는 건 병원비였다.

“저소득층 지원은 못 받으세요?”

“사업하는 동안은 안 됐어요.”

사업할 때는 소득이 잡혀서 혜택이 안 됐고, 소득이 없어지고 나니 나이가 여기까지 와 있었다.

“일을 좀 더 해볼까 싶기도 한데.”

“연세가 있으신데요.”

“그러게요.”

상담을 마치고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평생 일은 참 열심히 했는데.”

“네.”

“내가 일했지, 돈이 일하게 하는 건 한 번도 안 해봤네요.”

씁쓸했던 그 말씀. 내게 오래 남았다.

한인 어르신 들은 저축과 근로를 미덕으로 배우고 사셨다. 물론 훌륭한 미덕이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셨다.

다만 그건 몸이 튼튼할 때 통하는 방식이다. 몸으로 버는 돈은 몸이 멈추면 같이 멈춘다.

예순이 넘으면 내가 버는 것 말고, 내가 모아둔 것이 대신 벌어주는 게 조금은 있어야 한다. 액수가 크지 않아도 된다. 매달 자동으로 들어오는 게 있느냐 없느냐가 다르다.

김 선생님은 지금 살던 집에서 큰 부담 없이 지내고 계신다. 늦었지만 그거라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계신 분 중에 아직 오십 대, 육십 대 이신 분이 계시다면,

노후엔 내가 일하지 않고도 소득을 가져오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만큼은 느꼈으면 한다.

Similar Posts

  • 사라진 아버지의 이름

    전화는 화요일 오후 3시쯤 걸려 왔다. “Is this the reverse mortgage office?” 카랑카랑한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영어였고,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네, 맞습니다.” “I believe my father called you yesterday. Mr. C.” “아, 네. 어제 통화 드렸습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숨을 고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결심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We are not doing the reverse…

  • 무인도

    이분은 계산을 아주 잘하시는 분이었다. 한인타운 집을 팔고 외곽 실버타운으로 옮기면 얼마가 남는지 다 계산을 하셨다. 재산세가 얼마나 줄고 관리비가 얼마인지까지 다 적어 오셨다. “계산이 완벽하시네요.” “그렇죠? 그래서 가려고요.” 일 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저 다시 나오려고요.” 내가 되물었다. “…벌써요?” “네.” “뭐가 제일 불편하세요?” 잠깐 말이 없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 사람이 없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하나가…

  • 청소기

    얼마 전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한국인 장모님이 청소기로 미국인 사위 옷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위가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요. 한국인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더러웠을 거예요.”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고 웃었다. 자식 사랑만큼은 우리가 최고인 것 같다. 그 무렵에 윤 선생님이 상담을 오셨다. 리버사이드에 사시는데…

  • 이십만 불 싸게 샀지

    같은 주에 팔십 대 두 분을 상담했다. 한 분은 대 초반 L 선생님이었다. 25년째 가게를 하고 계셨다. 가게 렌트비만 한 달에 7천불이었다. “수입은 어떠세요?” “몇 년째 거의 없어요. 그래도 문은 열었지.” 그러다 코로나가 왔다. 렌트비를 못 내는 상황이 됐다. “4~5 년 전에 권리금을 조금 받고 팔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걸 놓친 게 제일 아쉬워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