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버지의 이름

전화는 화요일 오후 3시쯤 걸려 왔다.

“Is this the reverse mortgage office?”

카랑카랑한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영어였고,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네, 맞습니다.”

“I believe my father called you yesterday. Mr. C.”

“아, 네. 어제 통화 드렸습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숨을 고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결심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We are not doing the reverse mortgage.” 그리고 잠깐 뒤에 한 마디가 더 붙었다. “Please don’t contact my father again.”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 집에 먼저 연락한 적이 없다.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물으시는 것에 답을 드렸을 뿐이다. 서류 한 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책상 위 메모지에 전날 받아 적은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C 선생님, 81세.


하루 전, 그 목소리는 이렇게 시작했다.

“거, 리버스 모기지라는 거… 그거 나 같은 사람도 되는 거요?”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든 하나.”

“사모님은요? 집은 선생님 명의로 되어 있고요?”

수화기 너머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한참 뜸을 들이다 답이 왔다.

“마누라는 일찍 사별했고, 집은 음 그게… 딸 이름으로 돼 있어.”

“언제 넘기셨는데요?”

“십 년 됐지. 그때 융자가 15만불 정도 남았고 집은 60만불쯤 했으니까, 뭐 사실상 물려준 거요.”

“그날 기억나십니까?”

“나지. 에스크로 사무실에서 서류에 사인을 하는데, 그 애가 내 손을 딱 잡고 그럽디다.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얼마나 놓였는지 몰라. 집사람 보내고 처음으로 두 다리 뻗고 잤소, 그날.”

“조건이 있으셨습니까?”

“조건이랄 게 뭐 있소. 그 대신 모기지 페이먼트는 네가 내고 대신 아비 용돈이나 보태 달라, 그랬지. 그 애도 그러마 했고.”

“그런데요.”

“3~4 년쯤 지나니까 용돈이 먼저 뜸 해지더군. 그건 뭐 그럴 수 있지. 지도 이혼하고 애 둘 키우느라 사는 게 있을 테니. 그런데 재작년부터는 용돈은 물론이고 모기지 페이먼트를 안내고 있어”

“그럼 지금 페이먼트는 누가……”

“내가 내지. 누가 내겠소.”

“수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소셜 연금 2,200불.”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두드릴 것도 없었다.

“따님한테 말씀은 해보셨습니까?”

긴 침묵이 왔다.

“……했지.”

“뭐라고 하시던가요.”

“뭐라고 하긴.” 그가 웃었다.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이었다. “내가 뭐라고 못 했지.”

“……”

“전화를 걸기 전에 말이오, 할 말을 다 정해놨거든. 아버지가 지금 페이먼트를 못 낸다, 이거 좀 어떻게 해봐라. 그 두 마디를 세 번이나 연습했소.”

“그래서요.”

“신호가 가고, 그 애가 받고, daddy? 하는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뭔 줄 아시오?”

“……”

그래 밥은 먹었냐?

“밥은 먹었냐. 그 말이 나옵디다.”

그날 그는 자기 얘기를 오래 했다. 세탁소에서 스팀 다리미를 27년 이나 잡았다는 얘기, 아내를 쉰셋에 보내고 딸 하나를 혼자 키웠다는 얘기, 그 애 대학 등록금 대느라 일요일에도 문을 열었다는 얘기. 그러다 문득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생각한 게 리버스요. 집을 다시 내 이름으로 돌려놓고, 리버스를 받아서 페이먼트부터 없애고. 나 쓸 것만 조금 쓰다가, 나머지는 어차피 그 애 거 아니오.”

“맞습니다. 리버스 모기지를 받아도 집이 은행 소유가 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 돌아가신 뒤에도 쓰신 금액을 뺀 나머지는 그대로 따님께 갑니다. 그건 연방정부가 보증합니다.”

“그 애는 그걸 몰라. 리버스 받으면 집이 은행으로 넘어가는 줄 알고 있어.”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따님하고 통화하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럽시다. 내가 먼저 얘기해 보리다.”

그 통화가, 그 전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딸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한 번, 아주 잠깐 흔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He gave me that house—” 하다가 말을 멈추던 그 대목.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두 달쯤 뒤에 C 선생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재산세 고지서가 딸 이름으로 오는데 이걸 자기가 내는 게 맞느냐는, 별것 아닌 질문이었다. 2분이면 끝날 이야기였다. 답을 다 드렸는데도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바쁘시오?”

“아닙니다.”

“그 애가 말이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미국에 왔거든. 영어를 못해서 매일 울고 들어왔어. 내가 밤에 사전 찾아가며 숙제를 봐줬지. 나도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그가 잠깐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애가 나보다 영어를 잘하게 됐어. 학교에서 오는 편지도 그 애가 읽어주고, 은행에서 온 것도 그 애가 읽어주고.”

“……”

“그 때 부터 였나 싶어. 뭔 가가 뒤집힌 게.”

수화기 너머로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뭐. 그 애가, 나쁜 애는 아니오.”

창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 집의 타이틀 기록을 다시 확인해봤다.

딸과 아버지가 아닌 딸 혼자 였다. 선생님은 그 집 등기 어디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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