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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이분은 계산을 아주 잘하시는 분이었다. 한인타운 집을 팔고 외곽 실버타운으로 옮기면 얼마가 남는지 다 계산을 하셨다. 재산세가 얼마나 줄고 관리비가 얼마인지까지 다 적어 오셨다. “계산이 완벽하시네요.” “그렇죠? 그래서 가려고요.” 일 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저 다시 나오려고요.” 내가 되물었다. “…벌써요?” “네.” “뭐가 제일 불편하세요?” 잠깐 말이 없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 사람이 없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하나가 다 그랬다. 아시안 마켓이 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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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
얼마 전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한국인 장모님이 청소기로 미국인 사위 옷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위가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요. 한국인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더러웠을 거예요.”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고 웃었다. 자식 사랑만큼은 우리가 최고인 것 같다. 그 무렵에 윤 선생님이 상담을 오셨다. 리버사이드에 사시는데 지금 사시는 집은 빚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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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만 불 싸게 샀지
같은 주에 팔십 대 두 분을 상담했다. 한 분은 대 초반 L 선생님이었다. 25년째 가게를 하고 계셨다. 가게 렌트비만 한 달에 7천불이었다. “수입은 어떠세요?” “몇 년째 거의 없어요. 그래도 문은 열었지.” 그러다 코로나가 왔다. 렌트비를 못 내는 상황이 됐다. “4~5 년 전에 권리금을 조금 받고 팔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걸 놓친 게 제일 아쉬워요.” “그때 왜 안 파셨어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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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남긴 냉장고 메모
박 선생님은 아내분과 아홉 살 차이가 나신다. 한인 평균수명을 보면 남자가 78세, 여자가 85세 이다. 거기에 부부의 평균적인 나이 차를 더하면 박 선생님의 경우, 아내분은 남편 없이 15 년 정도를 혼자 사시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 선생님은 그 계산을 이미 해보신 분이었다. 중가주에서 자영업을 20 년 가량 하셨다. 내년에 은퇴하신다고 했다. “정리를 좀 하려고 합니다.” “급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제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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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살았다는 생각
남편을 보내고 두 달이 지나서야 강 여사님은 우편물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고 한동안은 머릿속이 하얬다. 친척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집이 조용해지자 식탁 위에 우편물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재산세 고지서, 보험 갱신 안내 편지, 아래층 세입자가 넣어놓은 쪽지, 이름 모를 회사에서 온 청구서들.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강 여사는 다시 봉투들을 모아 놨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통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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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집 한 채
평생 사업을 하신 분에게 남은 건 집 한 채였다. 김 선생님이 사무실에 오신 건 일흔이 가까워서였다. 이십 년 넘게 사업체를 하신 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사업으로 풍족하게 사셨다. “제일 좋을 때는 어느 정도셨어요?”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지요.” 그러다 크게 손해를 보셨다. 버티다가 결국 정리하셨다. 정리하고 보니 남은 게 집 한 채였다. “저축은 안 하셨어요?” “사업에 다 넣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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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그러는데 …2편
한 달 만에 전화가 왔다. “저기, 그거 안 하려고요.” “…네?” “리버스 말이요. 안 하기로 했어요.”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다. 대답이 조금 늦게 왔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그거 하면 집을 뺏긴대요.” 나는 아는 대로 다 말씀드렸다. “집은 안 뺏깁니다. 타이틀에 계속 선생님 이름으로 있고요. 팔고 싶으실 때 언제든 파실 수 있습니다.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상품입니다.” “……” “돌아가신 뒤에도 남은 돈은 자녀분께 갑니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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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그러는데… 1편
LA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야 하는 동네였다. 내비게이션이 두 번쯤 헤맸고, 마지막 10 분은 포장이 안 된 길이었다. 이런 외딴 지역은 은행에서 융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집을 사실 때 박 선생님은 전 주인한테서 직접 10만 불을 오너캐리 형식으로 빌렸다고 했다. 이자가 9.9퍼센트였다. 문을 열어주신 분은 예순아홉이었다. 악수를 하는데 좀 미안하지만 손이 나무껍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당부터 좀 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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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스태프 (Flagstaff)
John 씨는 일 년에 한 두 번쯤 예고도 없이 사무실에 나타난다. 그날도 문을 열면서부터 말을 시작했다. 주차가 어땠고, 오는 길이 어땠고, 요새 기름값이 어떻고. 원래 밝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그를 반갑게 맞지 못했다. 작년 이 맘 때 헤어지던 그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년 전에 만났던 John은 이렇게 말했다. “북가주에 있는 여동생 집에 한 달쯤 있다 왔어요. 마지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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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버지의 이름
전화는 화요일 오후 3시쯤 걸려 왔다. “Is this the reverse mortgage office?” 카랑카랑한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영어였고,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네, 맞습니다.” “I believe my father called you yesterday. Mr. C.” “아, 네. 어제 통화 드렸습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숨을 고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결심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We are not doing the reverse mortgage.” 그리고 잠깐 뒤에 한…